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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절, 의리의 본향 나주
- 나주는 조선시대까지 서남부 행정, 군사상 요지로 전남지방의 중심지역할을 했다. 따라서 객사건물인 금성관, 관아의 문인 정수루, 돌로 쌓은 나주읍성 등 관련 유적지가 많다. 금성산은 산이 험난하지 않고 나주 시내와 가깝게 있어 등산코스로 이용객이 많고 정렬사는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선생을 비롯해 나주의 충절인물 다섯 분을 모신 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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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정문학의 중심지 식영정
- 가슴마저 붉게 물들게하는 광주호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로 시작되는 성산별곡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광주호를 발 끝에 거느리고 성산(星山)을 마주한 언덕배기에 고매한 선비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식영정은 가사문학관 아래쪽 지곡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환벽당과는 창계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송강 정철의 자취가 배어있는 곳으로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에 한 칸짜리 서재와 넓은 툇마루로 구성돼 있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 툇마루에 앉아 광주호의 푸른 물을 바라보노라면 쫓기듯 살아온 일상이 저만치 달아난다. 식영정은 1560년(명종 15년) 서하당 김성원(1525∼1597)이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 이곳에 드나들던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 등은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리었는데 이들은 성산의 경치 스무 곳을 택해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 을 지었다. 이것이 곧 송강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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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원림건축의 백미 소쇄원
- 광주호 삼거리로 나와 충의교육원 못미쳐 오른쪽으로 소쇄원 주차장이 보인다. 길을 건너면 소쇄원 입구다. 입구의 죽림사이로 흐르는 조그만 계류를 따라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대숲을 거닐자면 청량한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며든다. 송강의 말처럼 “시냇물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니 손님이 와서 취하고는 깨지도 않는다”는 소쇄원(瀟灑園).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인공의 점을 찍찍되, 자연과 인공이 한 몸이 되어있는 곳. 이곳이 바로 조선시대 원림문화의 중심지인 소쇄원이다. 스승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된 후 결국 죽음을 당하자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벼슬에 대한 꿈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살기 위해 고향에 지은 것이다. 소쇄(瀟灑)란 말은 맑고 시원하다는 의미. 대숲이 끝나면서 만나는 대봉대(待鳳臺)는 봉황처럼 소중한 손님을 기다려 맞는다는 곳. 대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유난히 볕이 바른 곳이라는 의미의 애양단(愛陽壇)과 담에 흘러든 물이 다섯 굽이에 이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오곡문’(五曲門)이 보이고 담밑으로 구멍이 뚫려 계곡물이 흘러든다. 계곡의 물길까지를 거슬리지 않고자 했던 소쇄처사의 속깊음이 아름답다. 매대 위쪽으로는 주인의 사생활적 공간인 제월당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사랑방격인 광풍각이 자리하고 있다. 소쇄원은 152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 3대 약 70여년간에 걸쳐 완성했는데 광풍각 방 뒷편에 당시의 공간구성을 목판으로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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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옥헌원림
- 늦여름이 되면 정자 앞뒤의 수많은 백일홍꽃이 피어 무릉도원을 연상케하는 곳. 기념물 제44호. 고서사거리에서 창평 나들목쪽으로 1㎞ 쯤 간 후 팻말을 보고 오른쪽 마을길로 들어가면 명지원과 명옥헌원림 이정표가 있다.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는 명옥헌(鳴玉軒)은 산기슭을 타고 내리는 계류를 이용한 위연못과 아래연못, 이 연못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북쪽을 향해 경사지에 자리를 잡은 정자로 이루어져 있다. 별도의 담장없이 펼쳐진 산자락이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명옥헌은 오희도(1583∼1623년)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은거했는데 그의 아들인 오명중(1619∼1655)이 이곳 냇가에 정자를 짓고 배롱나무를 심어 명옥헌이라 했다 한다. 도보로 1분 거리에 인조가 오희도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타고 온 말을 맸다는 후산리 은행나무(기념물 제45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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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향기 그윽, 광주 예술의 거리
- 예향의 젊은초상 동부경찰서와 중앙로로 이어지는 ‘예술의 거리’는 예향의 전통과 멋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3백여 미터의 길에는 갤러리와 화랑, 화방, 소극장 등이 70여 개나 있어 크고 작은 전시회나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의 끼와 멋이 넘쳐흐르는 예술의 거리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의 관광 필수코스이다. 각종 예술행사 풍성 예술의 거리는 매주 토요일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더욱 활기를 띤다. 1달에 1차례는 남도문화예술진흥회가 주축이 된 음악회, 빛의 축제, 언더그라운드 공연, 캐릭터문화상품전, 빛의 축제 등이 열려 예술의 거리를 활성화시키는데 주력한다. --☞ 여기서 잠깐 - 개미시장 매주 토요일 열리는 개미시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풍물장터다. 고서예품에서부터 엽전, 떡살, 비녀, 놋그릇, 민화, 고서, 향로, 연적, 목각품 등 옛 선인들의 손때가 묻은 민속예술품들이 옹기종기 모여 새 주인을 기다린다. 귀한 책이나 문헌을 구하고자 들리는 연구자도 있고 자녀에게 옛 물건을 직접 보여주고자 나온 부모도 만나볼 수 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6시까지 판을 벌리며 아주 더운 여름이나 폭설이 내리지 않는 한 개미시장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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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돋이의 절경 여수 향일암
- 여수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출발지로 경치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관광지가 많다. 여수하면 오동도와 동백꽃이 연상될 정도로 유명한 오동도는 멀리서 보면 지형의 생김새가 오동잎처럼 보인다. 또한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수도도량 향일암은 남해 수평선의 일출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어 ‘향일암(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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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천불천탑과 와불의 운주사
- 화순읍에서 서남쪽으로 26km지점에 위치한 천태산을 한계로 동쪽에는 개천사, 서쪽에는 운주사가 있다. 운주사는 누워있는 부처상 즉 와불로 유명한데 뒷산 등성이에 누워 있는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북면에 위치한 백아산은 골짜기가 매우 깊어 6·25전쟁 때 빨치산 본거지가 있었고 신라 경문왕에 지은 쌍봉사와 만성피로, 신경통에 특효가 있는 화순온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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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의 고장 담양
- 대나무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담양은 마을마다 풍성한 대나무숲이 형성되어 있다. 담양읍내에는 대나무의 고장답게 죽물박물관이 있어 다양한 죽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광주와 인접해 있는 담양에는 가사문학의 산실인 소쇄원, 식영정 등 각종 정자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드라이브코스로 각광을 받는 담양호, 전남의 5대 명산의 하나인 추월산, 가마골 야영장도 담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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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8경중 하나, 장성 백양사
- 장성에는 내장산과 함께 대한8경의 하나인 백양사가 위치해 있다. 백제 무왕 33년에 창건했다는 백양사는 대웅전, 극락보전, 8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다. 특히 가을의 단풍은 천하의 절경으로 꼽힌다. 때묻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장성군 서삼면 금곡리 영화마을은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찍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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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향 싱그러운 보성 녹차밭
- 국내 최대의 차마을로 전국 차의 30%를 생산하는 보성. 온 산에는 녹색의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한 녹향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보성 차밭은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녹색의 물결 때문에 각종 드라마와 광고의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보성의 진산이라 일컫는 제암산 은 봄의 철쭉, 여름의 녹음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서편제소리로 널리 알려진 이곳에는 서편제 보성소리전수관과 서재필기념관 등이 있다.